한국 일상 / / 2020. 4. 24. 00:37

코로나덕에 함께 하지 못하는 결혼기념일 1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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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바람도 아닌 토네이도처럼 흐른 것 같다. 

벌써 거너씨와 내가 결혼한 지 1년이 됐다. 

거너씨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1주년을 축하한다며, 나와 결혼한 1년이 어땠느냐고 물어봤다. 

결혼 후 함께 한 시간은 1년 12개월 중 고작 4개월하고 일주일이기에, 어쩌고 저쩌고 얘기할 거리도 없다고 했다. 

그렇다. 

우리는 결혼 후보다 결혼 전에 훨씬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결혼 직후 견우와 직녀마냥 떨어질 수 밖에 없었는데, 시차마저 14시간 차이가 나는 곳에 있으니 마치 나는 아침에 나타나는 직녀, 그는 밤에만 나타나는 견우처럼 전화는 커녕 실시간으로 문자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베트남에서 1년간의 생활을 마무리 할 무렵, 그는 함께 미국으로 가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기에 별로 놀람도 없이 수락했다. 

그는 한국과 베트남에서 살며 약 4년이란 시간을 해외에 있다보니 고국을 무척이나 그리워하고 있었다. 

베트남 비자가 만료되던 날 함께 한국에 가서 혼인신고를 한 게 작년 이맘때, 결혼식을 올린 게 작년 가을이다. 

우리는 결혼을 기념하는 날짜가 두 개 생겼다며, 이 핑계로 1년에 두 번씩 축하 기분을 내려했다. 

혼인신고 후, 그가 먼저 가서 자리 잡아두는 게 좋을 것 같아 미국으로 먼저 보냈고, 비자 신청도 그 때 같이 했기에 3~4개월 기다리면 금방 나도 따라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이렇게나 오래걸릴 줄 알았으면 그 때 미국에 안 보냈을 것이다. 

느려터진 미국의 행정처리는 본인 일 아니라고 세월아 내월아 하고 있는데, 이 와중에 코로나까지 터지셨다. 

거너씨가 올 해 4월 말이나 5월말 쯤 휴가를 내 한국으로 잠시 오겠다고 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그 계획은 무산된지 오래다. 

한국에 오더라도 자가격리 2주나 해야되는데 오는 게 큰 의미가 있나 싶고, 여러번 공항을 거쳐야 하기에 혹여나 진짜 감염되지 않을까 우려가 크다. 

그렇다고 아직 미국의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는데 내가 또 다시 미국으로 가기도 겁나는 게 사실이다. 

얼마전 드디어 비자 신청 서류가 통과되긴 했는데, 그건 아주 아주 기초적인 첫 번째 과정이 끝났을 뿐, 아직 최종 비자까지 받으려면 갈 길이 멀었다. 

게다가 주한 미국 대사관은 문을 닫고 있어 언제 인터뷰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고, 트럼프는 코로나 핑계로 자꾸 이민을 어렵게 만든다. 

기다림에 조금 지쳐가기도 하고, 한국이 그립다고 하는 거너를 보니 그냥 다 제쳐두고 한국에 와서 같이 살자 하고 싶지만, 일자리와 집은 어떻게 할 것인가. 

쉽게 한국에 오라고도 할 수 없다. 

이렇게 그저 우리는 상황이 나아지길 바라며 가능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하는데, 안 힘들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운이 좋은 것도 많다. 

내가 미국에 있을 땐 코로나 발병 전이었으니, 마음껏 다니며 거기 생활을 즐길 수 있었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도 신천지 사건이 터지기 전이라 자가격리 걱정 없이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 

걷잡을 수 없이 내려가는 경제상황에 이미 실직을 하거나 수입이 줄어든 사람도 많은데, 다행히 아직 그는 회사에 붙어있고, 나도 일을 이어나갈 수 있다. 

그 자체만으로도 사실 되게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고, 우리는 운이 좋다라고 말해야 될 것이다. 

이렇게 멘탈을 부여잡으며 1주년 결혼기념일 각자 차려입고 영상통화로 밥을 먹자고 했다. 

그의 아이디어다 ㅎㅎ 

그런데 낮과 밤이 달라 그럴 수도 없다 -__- 젠장 

헛헛한 이 마음을 지난 발렌타인 때 그가 만든 스테이크 사진과, 신행지에서 베트남 사람들이 조잡하게 만들어준 허니문 축하 케익을 보며 달랜다. 

 

부디 식 올린지 1주년이 되는 올 가을에는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본의아니게 국제결혼을 한 사람으로써, 국제결혼 비추다. 

나라가 다르니 행정처리가 참으로 어렵다. 

결혼해도 쉽게 같이 살 수가 없다; 기약없는 기다림이 빨리 끝났으면. 

오늘도 평소와 다름 없이 방콕한 결혼기념일 1주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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