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 중 하나를 본 순간부터 팬이 되었고, 덩달아 그 음악까지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지브리 애니메이션 음악을 작곡한 히사이시 조가 오케스트라 공연을 하는 걸 유튜브로 보고, 꼭 직접 가서 들어보고 싶다는 꿈을 오랫동안 꿔왔는데 드디어 콘서트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히사이시 조 씨는 현재 세계 투어를 하고 있는 중이고, 미국에서도 콘서트를 여는 족족 매진되었는데요. 매진되기 전 뉴욕 콘서트 티켓을 구매할 수 있어 다녀왔습니다.
뉴욕 콘서트는 2만명의 관중 수용이 가능한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본래 이틀만 하기로 했는데, 표가 금방 다 팔리는 바람에 하루 더 연장해서 3일 동안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전부 매진되었다고 들었고, 뉴욕 공연 외에도 시카고 콘서트도 매진이 떴습니다.
공연장은 3층까지 좌석이 있는데 그 위까지 정말 관중이 아주 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유명한 공연장답게 엄청나게 넓은 공간과 소리 울림에 아주 좋은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흥미로웠던 점은 보통 공연장에 가면 해당 공연자 굿즈를 팔거나 공연장 곳곳에 포스터가 붙어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히사이시조 지브리 콘서트는 그 흔한 포스터 한 장 어디에서 붙어있지 않았으며 굿즈 판매도 전혀 없었습니다. 정말 순수하게 오케스트라 악단의 음악에만 집중해서 듣게 하는 환경입니다. 물론 그런 거 없이도 매진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구사하는 공연이기에 그렇기도 한 것 같습니다.
다른 공연장에 가면 음료는 물론이고 간식거리도 판매하는데, 제가 간 1층은 간식거리는 없었습니다. 먹을 거리는 아예 팔지 않고 음료만 판매하고 있었는데, 음료는 호텔 고급바를 연상하게 하는 모습에, 각종 칵테일을 팔고 있는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공연장 홀도 조명도 그렇고 카운터도 그렇고 호텔 라운지와 닮아 있는 모습입니다. 매진된 공연이라 사람이 엄청 많고 번잡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매진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공연장을 돌아다니기에 너무 널널해서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무대에는 세 개의 큰 스크린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공연 전에는 그 어떤 영상이나 사진도 나오지 않습니다. 히사이시 조 심포니 콘서트,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음악을 연주한다는 공연 내용만 영어로 짧게 적혀있을 뿐입니다. 8시 공연이어서 30분 전에 도착했고, 공연도 8시를 살짝 넘긴 상태에서 시작했습니다.
모든 곡마다 다 나오는 건 아니지만, 보통 연주하는 해당 애니메이션의 일정 부분, 혹은 배경 음악이 중요한 장면이 스크린에 나옵니다.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한 부분을 눈 앞에서 연주해 주는 라이브 음악을 들으면서 보는 건 또 다른 느낌입니다. 평소에 보던 것 보다도 몰입감이 엄청나고, 살아있는 음악 때문인지 내가 이 만화 안에 들어가 있는 착각까지도 생깁니다. 공연마다 레퍼토리는 정해져 있는 것 같은데 보통 천공의 성 라퓨타 음악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부분은 곡이 새로 시작될 때 스크린에 어떤 애니메이션의 곡인지 글이 나오기는 하지만 일본어로만 나옵니다. 때문에 일본어를 알지 못하는 관객들은 제목을 봐도 뭔지 몰라 멍하니 있다가 스크린에 영상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면 그때 곡을 인지하고 환호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뉴욕 관객 중에서는 반 이상이 아시아계가 많았고, 미국 정서인 건지 곡이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에 지휘자에게 사랑한다며 소리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수많은 연주자와 합창단이 함께 어우러지는 곡들은 말할 것도 없이 황홀한데, 저는 히사이시 조 씨가 혼자 치는 피아노 곡도 굉장히 좋아합니다. 전문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는 분은 아니지만, 훌륭한 작곡가인만큼 피아노 실력도 뛰어나고, 특히 본인이 만든 곡들을 칠 때 피아노에서 감정이 세세하게 느껴져서 이분의 피아노 연주를 사랑하게 됐습니다. 얼굴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지만 지휘를 할 때, 또 피아노를 칠 때는 전혀 그의 고령의 나이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또 중간에 소프라노 성악가와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히사이지 조 씨의 따님이 등장해 함께 노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들의 노래를 듣고 처음으로 오페라 공연도 가고 싶어 졌습니다. 공연을 보는 내내 이 밤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 인생 최고의 콘서트였습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꼭 히사이시 조의 오케스트라 공연에 가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여행, 해외살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트롤 멜라토닌 복용 후기 및 부작용 (2) | 2024.08.28 |
---|---|
뮤지컬 알라딘 티켓 및 후기 (0) | 2024.08.10 |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 물랑루즈 티켓및 후기 (1) | 2024.07.26 |
미국 시트콤 사인펠드 촬영지 뉴욕 식당 (8) | 2024.07.25 |
뉴욕 써밋 원 밴더빌트 입장권 및 방문팁 (6) | 2024.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