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단독주택에 잠시 살았던 3년 정도를 빼고는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아파트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넓직한 단독주택보다는 조금 크기가 작더라도 관리소가 있는 아파트를 선호하는 편이고요.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다 관리해야 하는 주택보다는 요청을 하거나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관리소가 있는게 훨씬 편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또 지금이야 이웃끼리 서로 얼굴도 모르고 사는 일이 많지만, 저 어릴 때는 같은 아파트 한 동의 사람들이 모두 가족처럼 친하게 지냈던 기억이 있어요.
집 문이 닫혀있으면 그냥 옆 집 가서 놀다가 오는 경우도 있고,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이웃끼리 모여 같이 밥을 먹는 일도 많았고요.
분명 그 때도 층간소음이나 이런 문제가 있었는데 지금처럼 그걸로 이웃끼리 크게 얼굴 붉히거나 했던 일이 별로 떠오르지를 않네요.
성인이 되고 나서는 10년을 넘게 마주보고 산 이웃들과도 데면데면해서 같이 엘레베이터 타는 걸 어색해하던 삶을 살았는데, 미국에 오니 이웃들이 조금 다른 느낌이긴 해요.
테네시에서는 두 가구가 한 주택에 사는 형태의 집에 살았는데, 주변에 같은 또래가 별로 없기도 하고 이웃들과 특별히 교류할 일이 없었어요.
그래도 인상적이었던 게, 어느 날 앞 집에 사는 할아버지가 갑자기 문을 두드렸는데, 제 차 라이트가 켜져 있다고 알려주러 오셨더라고요.
그 전까지 얼굴 한 번 마주친 적 없는 할아버지였는데, 차량 라이트가 계속 켜져있으면 베터리 방전이 쉽기 때문에, 그걸 걱정해서 직접 집까지 와서 알려주신 게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현재 살고 있는 앨리바마에서는 여러 건물이 모여있는 아파트 컴플렉스에 살고 있는데, 한 건물 당 3층, 그리고 한 층 당 네 가구가 살고 있어요.
아파트 전체 가구 수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약 200가구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여기서는 같은 층에 사는 어떤 할머니와 안면을 트고, 그 외에는 이웃들과 마주치는 일이 별로 없어서 역시나 큰 교류는 없어요.
그런데 이웃들이 저희 때문에 자꾸 관리사무소에 연락을 합니다.
하루는 차고 문을 닫는 걸 깜빡하고 외출을 했어요.
집에 거의 다 와가는데, 관리소에서 전화가 왔더라고요.
차고 문이 열려있다고 너희 이웃이 연락을 해 왔다고요.
차고에는 집 안으로 통하는 문이 있는데, 보통 차고 문을 닫고 나가니까 그 문은 잠궈두질 않거든요.
때문에 차고 문을 열어두면 차고를 통해 누구든지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 좋지는 않죠.
아무리 아파트 내에 좋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해도 사람 마음이 갑자기 순식간에 바뀔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그게 걱정됐는지 저희 옆 집에 사는 사람이 관리소에 전화를 했더라고요.
신경 써 주니 감사한 일이죠.
또, 저희 집 실외기가 고장나서 히터 문제가 있는데, 그 때문에 최근 영하 1~2도로 떨어지자 실외기가 얼어버렸어요.
본래 히터가 잘 안 나와서 실외기가 얼어버린지도 몰랐는데, 저희 집 실외기가 얼었다고 앞 집에서 찾아왔어요;
저녁에 누가 문을 크게 두드리길래 뭔가 했더니, 너네 실외기 얼어붙었는데 아냐고 하는 이웃 ㅎㅎ
신경써주는 이웃에게는 감사한 일. 그런데 관리소에서는 실외기가 녹아야 히터를 고칠 수 있대나 뭐래나 헛소리만 해대더라구요 -0-
그리고 다음 날은 윗집에 사는 이웃이 관리소에 저희를 신고했어요.
아랫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고 -0-
저희가 이사온 건 봤는데, 그 이후로 저 집에서 어떤 사람 소리도 듣지 못 했으며, 사람을 마주친 적도 없고, 실외기도 얼어붙어있다고. 심지어 오늘 아침엔 문까지 두드려봤는데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고요.
안에 누가 쓰러졌거나 죽어있다고 생각한건지 관리소에 연락했더군요 ㅋㅋㅋ
실외기 건으로 저희가 관리소랑 통화하던 중에 직원한테 전해들었어요.
저희는 둘 뿐이고, 집에 동물도 없고, TV도 없으니 뭐 딱히 큰 소리 날 일도 없고.
둘이 싸우더라도 난리치면서 싸우는 편이 아니라 비교적 조용히 사는 편이에요.
그렇다고 윗집이 저희 집에 무슨 일 있는 것 같다고 신고할 줄이야 ㅎㅎ
산책하거나 헬스장 갈 때 빼고는 거의 차고로 다니니까 윗집과 마주칠 일이 적은데, 그렇다고 이웃들이 이리 걱정을 해 줄줄은 몰랐네요 ㅎㅎ
이틀 전에는 앞 집이 점심 때 찾아왔어요
엄청 급하게 문을 두드렸는데, 알고보니 컴퓨터가 고장 났는데 고쳐달라고 ;;
다들 컴퓨터로 재택하는 일이 많으니까, 컴퓨터 한 번 문제 생기면 일을 못 해서 난리가 나죠.
속은 타들어가는데 도움 청할 곳이 없었나봐요. 갑자기 저희 집으로 왔더라고요.
그냥 아무나 좀 도와줬으면 싶었던 것 같아요.
웃기게도 거너씨가 진짜 그 집 컴퓨터를 고치긴 고쳤어요 ㅋㅋㅋㅋㅋㅋㅋ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살던 아파트에서는 컴퓨터 고쳐달라고 갑자기 남의 집에 찾아오는 이웃도 없었고, 아랫집이 너무 조용하다고 관리소에 연락하는 이웃도 본 적이 없었기에, 저는 이런 이웃들이 신기하기만 해요.
거너씨는 오히려 제가 한국에서 너무 이웃과 교류가 없었던 편이라고, 미국에서 이 정도는 그냥 일반적이라고 하더군요.
물론 운 좋게 좋은 이웃들은 만난 것 같기도 하고요.
한국과 비교했을 때 처음 보는 사람과도 그냥 쉽게 안부인사 정도는 주고 받고 말 거는 문화가 한 몫 한 것 같기도 하네요.
한국도 예전엔 좀 더 그런 분위기였던 것 같은데, 확실히 요즘엔 낯선 이에 대한 경계심이 더 강해져서 그런지, 전에 비해 삭막한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에요.
최근의 일을 통해서 이웃과도 가족처럼 지냈던 예전에 그 분위기가 그립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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