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했던 미국 DMV에서 운전면허증 교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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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시 주는 한국과 운전면허증 관련해서 상호협정을 맺었기 때문에, 저는 미국에서 다시 운전면허를 딸 필요가 없었어요. 

 

그런데 바보같이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게, 그냥 미국 와서 한국 운전 면허증 보여주면 바로 미국 면허증으로 교환해 줄거라 착각했던거죠. 

 

막상 와서 조사해보니 그 과정이 쉽지 않았고, 어제 드디어 미국 면허증을 발급 받았습니다 ㅠㅠㅠ 

 

갖고 있는 국제 면허증 만료일이 딱 어제여서, 어제 면허증 교환을 못 하면 무면허 신세가 될 뻔했는데, 천만다행이죠. 

 

면허증 교환을 위해서 그간 했던 여정을 적어보자면, 

 

1. 지역 내 DMV (미국 운전면허 센터) 에 전화해서 한국 면허증으로 교환 가능하냐고 질문. 

협정도 제대로 모르는 지역이 안 된다고 대답. 

테네시 전체 주 DMV 담당자한테 이메일로 재문의. 

서류만 제대로 구비해가면 아무 문제 없이 교환 가능하다고 답변옴. 

 

2. 제일 가까운 한국 영사관에 운전면허 공증서류 요청. 

(직접 찾아가도 되지만 우편으로 가능. 여권과 운전면허사본 보냄) 

2주일 좀 넘게 걸려서 서류 받음. 

 

3. 테네시 주에 거주한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가입해 둔 자동차 보험증 출력. 

 

4. 역시나 거주 증명에 도움이 될까 싶어 은행 가서 계좌 생성. 

계좌는 만들 수 있었으나, 계좌를 갖고 있다는 내역서 혹은 증명서는 계좌 개설 후 한 달 뒤 가능하다고 하여, 서류 제외. 

 

5. 한국 면허증, 영사관 공증서류, 자동차 보험 출력증, 여권 들고, 지역 내 DMV방문. 

 

그냥 DMV방문하기까지도 참 여러 여정이 있었는데, 방문하고 나니 더 가관이었어요 ㅋㅋㅋㅋㅋㅋ

 

정말 최종보스를 만난 느낌. 

 

가기 전 까지 다른 분들의 면허교환기를 읽으면서 정말 걱정을 많이 했어요. 

 

어떤 직원을 만나느냐에 따라 조금 더 수월하게 교환할 수도 있고, 몇 번이나 거절 당할 수도 있다고. 

 

영어 잘 모른다고 차별을 하기도 하고, 제대로 해도 그들의 거지같은 행정 시스템 때문에 고생한다는 글들이 많았죠. 

 

심지어 어떤 분은 1년간의 미국 생활을 위해, 이주 후 바로 면허 교환을 신청했지만, 계속 잘 안 되서 4번인가 DMV를 방문했고, 6개월만에 면허 받았다는 분까지. 

 

아니 1년 사는데 6개월만에 면허가 나오면 어쩌자는건지...;;; 

 

그런 글들을 읽으니, 나도 가서 거절당하면 어떻하나... 이제 국제면허도 없는데.. 등등 참 마음을 많이 졸였습니다. 

 

도심에 사는 게 아니라서 차 없으면 할 수 있는 게 없기에 ㅠ 

 

DMV는 외국인들 뿐만 아니라 미국인들도 정말 가기 싫어하는 곳 중 하나예요. 

 

'주토피아' 영화에서 주인공인 토끼와 여우가 증거 수집을 위해 'DMV'를 찾아가는데, 거기 담당직원은 '나무늘보'로 나와요. 

 

왜 나무늘보로 나오는지 당시 영화를 봤을 때는 그냥 일처리 느린 공무원들, 그리고 개그요소를 위해서 나무늘보 캐릭터를 선택한 건가 했는데, 미국인들 모두 DMV직원은 나무늘보 외에는 다른 동물로 표현할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그들이 틀렸어요. 

 

DMV직원은 나무 늘보가 아니에요. 

 

나무늘보보다 더 느려요...........차라리 나무늘보가 일을 더 빨리 할 것 같아요... 

 

진심이에요. 

 

여기가 제가 방문만 지역 내 DMV예요. 

 

현지인에게도 까다롭고 불친절하게 구는 곳이기에, 거너씨는 제가 혼자가면 분명 안 좋은 꼴을 당할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같이 가기로 했는데 당연히 DMV는 평일에만 영업을 하고, 거너씨는 평일 8시부터 5시까지 일을 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를 하고는 있지만, 재택근무라고 해도 일하는 시간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있어야 돼요. 

 

그럼 점심시간을 이용해 방문을 하기로 하고, 아침부터 DMV근처에 있는 카페에 가서 일을 시작했어요. 

 

왜냐면 제일 가까운 DMV가 집에서 30분거리에 있었기에 미리 가서 점심시간을 전부 활용하기 위해서요. 

 

11시 조금 넘어서 DMV로 이동했는데, 그 시간에도 사람들이 꽤 많이 있더라고요. 

 

눈에 보이는 사람만 4~50명 정도 되는 것 같았어요. 

입구에서부터 이렇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했어요. 

갔다고 바로 번호표를 받는 게 아니라, 입구 앞에 있는 직원한테 무슨 용무로 왔는지, 그리고 그 용무에 필요한 서류는 다 가지고 왔는지 확인을 받은 후에야 번호표를 얻을 수 있어요. 

 

영어가 약한 저 대신에 거너씨가 용무를 다 설명했는데, 이 입구 직원이 듣던대로 엄청 불친절했어요. 

 

사회보장번호 (SSN)이 없으니까 안 된다는 거에요. 

 

미국 정부는 너무 일처리가 느린 탓에 저는 지금도 제 그린카드 (영주권)과 사회보장번호를 언제 받을 지 몰라요. 

 

전화해도 그냥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하니까. 

 

그런데 그게 없다고 면허 교환 못 하면 뭐 계속 집에만 기약없이 틀어박혀있으란겁니까 뭡니까. 

 

돌아가라고 하길래, 테네시 주 전체 DMV담당자한테 받은 이메일을 보여줬어요. 

 

그 사람이 '만일' 사회보장번호가 있으면 갖고 오라고 했지만, '무조건' 갖고 오라고는 안 적었거든요. 

 

그랬더니 그 입구 직원이 그럼 일단 번호표는 줄건데, 창구 직원이 사회보장번호를 요구할지도 모르니 알아서 하라고 하며 번호표를 줬어요. 

 

엄청 불.친.절

 

딱 봐도 뭔가 복잡해보이는 사안 같으니 일하기 싫어서 어떻게든 밖으로 내보내려는 느낌 ㅋㅋ 

 

다들 이렇게 영혼 없는 표정으로 멍하니 앉아서 자기 차례를 기다려요. 

 

기약 없어요. 그냥 기다리는거에요. 

 

근데 제일 어이없는게 여기에는 흔한 자판기도 없고, TV도 없어요. 

 

심지어 핸드폰이 안 되요! 

 

핸드폰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는 게 아니라, 아예 데이터 연결이 끊겨요..... 

 

와이파이 없는 건 둘째치고, 무슨 첩첩산중도 아니고, 공공기관인데 인터넷 연결이 끊긴다는 게 말이 됩니까. 

 

사막 한 가운데 있는 것처럼 데이터 신호가 잡히지 않아요. 

 

핸드폰도 책도 TV도 없고 뭐 아무것도 없이 그냥 계속 기다리는거에요. 

 

이게 무슨 벌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사진 속 사람들 표정이 다들 저렇습니다.. 

 

센터 내 모니터라고는 저거 하나밖에 없는데, 각 섹션별로 번호표가 불려지는 모니터예요. 

 

여기는 면허 필기시험, 실기시험, 갱신 등등 운전면허에 관련된 모든 걸 다 하고 있어서, 각 섹션별로 번호표도 다르더라고요. 

 

제가 여기에 11시 10분쯤에 도착했고, 번호표는 D 130을 받았어요. 

 

당시 D 112번을 하고 있었는데 도통 다음 번호로 넘어가질 않더군요. 

 

12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고, 거너씨는 센터 내에서 일을 할 생각이었지만 인터넷이 전혀 안 되니 할 수가 없었죠. 

 

제가 혼자 처리하게 두고 가는 게 불안했던 거너씨는 시아버지한테 전화해서, 저와 함께 기다려주면서 일처리를 도와달라고 SOS를 했어요. 

 

아무 오락거리도 없이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이런 곳에 저때문에 오시는 건 죄송했지만, 창구 직원 또한불친절하거나 태클을 걸면 저 혼자 처리할 자신이 없었어요. 

 

일단 그 사람들의 영어를 알아듣기가 힘들었구요. 

 

그렇게 거너씨는 12시가 조금 넘어 다시 카페로 일을 하러 갔고, 시아버지와 저는 점심도 거른 채 계속 기다렸죠. 

 

다행히 시아버지는 아침을 늦게 먹어서 배가 별로 안 고프다고 하셨지만, 전 아침 8시에 요거트 먹은 게 다였기에 위장이 아주 난리가 났었습니다. 

 

제가 DMV에서 총 기다리는 시간은 4시간이에요.................-_-

 

11시 좀 넘어서 들어왔는데 제 번호표가 호명된 게 3시 반쯤이었습니다. 

믿어지시나요?  DMV가 점심시간에 일을 쉬는 것도 아니에요. 

 

물론 직원들이 교대로 밥을 먹고 오니까 1시 전까지는 일처리가 더 느려지긴 하지만 그 이후로도 계속 느려서 면허 하나 교환하는데 심지어 4시간을 기다렸어요! 

 

물론 날에 따라 운에 따라 30~40분 내에 처리되는 일도 있다고 하는데..... 저처럼 4시간은 좀 심했죠... 

 

저는 무슨 밖에서 차를 조립하는 교육이라도 하는 줄 알았어요. 

 

도대체 뭘 하길래 약 20명 정도 처리하는데 4시간이나 걸리는 걸까요... 

 

죽을뻔했어요 ㅋㅋㅋㅋㅋ 

 

시아빠랑 그냥 이런 저런 얘기 하다가, 멍 때리다가, 그렇게 4시간이 간 것 같아요. 

 

4시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제 번호가 호명됐고, 드디어 내 차례인가 싶어서 공격적으로 제가 먼저 가서 장황하게 얘기했어요. 

 

그냥 '면허 교환하러 왔다'하면 되는데, 한국 협정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ㅎㅎㅎㅎ 

 

거절당할까봐 무서워서 미리 밑밥으로 길게 설명을... 

 

다행히 창구 직원이 친절한 사람이었어요 ㅠㅠㅠㅠ 

 

제 장황한 설명을 참을성 있게 듣고, "그래서 면허 교환하러 왔다고? OK." 

 

너무 쿨하게 OK를 외쳐서 오히려 당황. 

 

시력검사를 할테니 기계 앞에 눈을 대고 숫자를 읽어달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제가 그 사람 영어를 못 알아들었어요 ㅠㅠㅠ 

 

기계에 눈을 갖다대니 숫자가 너무 많은데 도통 어디를 읽으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서 ㅠㅠ 

 

그런데도 그 직원을 세 네번 말을 하면서, 짜증 한 번 안 내고 기다려줬어요. 

 

입구 직원에 비하면 정말 천사. 

 

근데 이번에는 시스템 문제... 

 

면허 교환을 위해 그 사람도 정해진 컴퓨터 프로그램에 '나라' 카테고리에서 '한국'을 골라야하는데, '한국' 카테고리가 없다는거에요 -0- !! 

 

South Korea도 없고, Republic of Korea도 없대요... 

 

한국을 나라 취급 안 할정도로, 우리나라 위상이 이따위였던가... 

 

90년대나 2000년대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넘기겠지만, 지금의 한국은 다르지 않나요. 

 

코로나 전 까지 매 해 관광객과 유학생수가 늘고 있었고, 아카데미랑 빌보드에서 1위 하는 나라가 한국 아니였던가.... 

 

나름 해외나가면 한국 사람인거에 자긍심 느끼고 있었는데, 미국 면허 센터에서는 '나라' 카테고리에 아예 '한국' 항목이 없다니..... 

 

이것 때문에 내가 면허 못 받는 거 아니가 하고, 하마터면 'North Korea'카테고리라도 있으면 북한사람이라고 하고 그냥 받고 싶었어요. 

 

무튼 이거 때문에 센터 직원들이 갑자기 다 난리가 났어요. 

 

제 앞으로 센터 모든 직원들이 다 모이기 시작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다들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왜 없냐고, 어떻게 해야 하냐고, 본사에 전화해야 하냐 등등 자기들끼리 한 데 모여서 회의를 했어요. 

 

천사 직원이 자기가 15년간 DMV에서 일을 했는데, 한국 면허를 바꾸는 일는 처음 겪는 일이라 힘들다고 합디다..

 

제가 얼마나 아시아사람 없는 곳에 살고 있는지 느껴지시나요 ㅎㅎㅎ 

 

저도 이 동네에서 한국사람은 한 명도 본 적 없기에 그의 고충이 이해가 됐습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해주려는 모습에 너무 감동. 

 

불친절한 직원들은 선택할 수 있는 나라 카테고리가 없다며 그냥 돌려보냈을지도 모르죠. 

 

결국 그들이 선택한 일은 '한국'이라는 항목을 추가해서 적는 것 ㅋㅋㅋ 

 

새로운 항목을 만들어 적는 걸로 일단락 됐어요. 

 

미국 면허증은 눈, 머리 색깔, 키. 몸무게도 다 물어봐요. 

 

근데 한국이랑 단위가 다르잖아요?  저는 제 키가 몇 인치인지 몰라요. 

 

그래서 천사 직원이 얼추 자기랑 비슷한 것 같다고 알아서 기재 ㅋㅋㅋ 

 

그냥 면허장에 키랑 몸무게 재는 기계를 갖다 두면 될것을 -_-... ㅉㅉ.. 

 

머리색이랑 눈알 색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뭐라 답해야 하나 했는데 그냥 다 검정이라고 했어요. 

 

그렇게 마지막까지도 긴 사투 끝에 드디어 임시 면허증을 발급 받았습니다. 

 

왜 임시냐면, 당일 받는 건 종이로 된 면허고, 플라스틱으로 된 정식 면허증은 나중에 집으로 배송을 해준대요. 

 

예전엔 그 자리에서 바로 플라스틱 면허증이 나왔는데, 뭐 때문인지 바뀌었다고 하네요. 

 

그래도 쨌든 정식 미국 면허가 발급됐으니 저는 이제 더욱이 합법적으로 운전을 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으아아 ㅠ 

 

감격스럽네요. 

 

이 나라는 별 거 아닌 걸 힘들고 고통스럽게 해서 감동을 안겨주는 특징이 있는 것 같습니다. 

 

거너씨도 걱정이 됐는지 제가 창구 일을 보고 있을 때, 어느 새 다시 센터로 와 있더라고요.

 

성격상 걱정을 많이 하고 사는 사람이라 그렇습니다. 

 

무튼 무사히 잘 마무리를 하고, 긴 하루를 보낸 저에게 수고했다며 흑맥주를 들이부었습니다 ㅋㅋㅋㅋㅋ 

 

역시 하루의 마무리는 맥주가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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