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주에는 등산 애호가들의 성지라고 해도 될 만큼 아름다운 산이 정말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레이니어 산은 만년설과 함께 계절마다 변화하는 색이 다채로워 매년 수많은 등산객을 끌어들입니다. 등산로도 공식적으로 무려 165개가 있습니다. 저는 그중 대표 트레일 두 곳을 가보고 하루는 야생 캠핑, 하루는 산장에 묵어봤는데요. 오늘 그 생생한 등산 및 캠핑 후기를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레이니어 산 가는 법
가장 좋은 방법은 시애틀-타코마 국제 공항으로 가서, 차를 렌트에 산까지 가는 방법입니다. 대중교통으로 가기에는 너무나 제한적이라 꼭 차가 필요합니다. 저는 Turo라는 앱으로 차 렌트에서 갔고, 어느 트레일 입구로 가느냐에 따라 걸리는 시가은 다르긴 하지만 보통 2시간~ 2시간 반 정도 걸립니다. 계절에 따라 한정 개방하는 입구도 있고, 계절 상관없이 연중 개방하는 입구도 있기 때문에 어느 시기에 어떤 트레일을 이용하는지에 따라 주요 입구로도 달라집니다. 국립공원이기는 하지만 입장료가 있습니다. 연간 패스를 비롯해 다른 입장료 옵션도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차량 당 입장료는 30달러, 주간권의 경우 일주일간 유효합니다. 가기 전에 날씨를 확인하고 가시는 게 정말 중요한데, 워싱턴 주는 비가 자주 오기로 유명한 데다 레이니어 산은 고산지대에 있어 날씨 변화가 정말 심합니다. 저도 비 맞으면서 캠핑해서 고생했습니다. 비 오면 풍경도 제대로 안 보이고, 등산은 정말 날씨가 다 인 것 같습니다.
레이니어 산 추천 명소와 트레일
레이니어 산은 어느 트레일을 걸어도 풍경이 멋있지만 그 중에서도 유명한 명소와 트레일은 있습니다. 제일 유명한 명소는 '파라다이스'라는 이름이 붙은 장소로, 여름철에는 야생화가 만개하고 가을철에는 붉게 물든 단풍을 볼 수 있으며 만년설과 폭포를 같이 볼 수 있어 인기가 좋습니다. 해발 2000미터에 위치해 있는 '선라이즈'라는 곳은 여름에만 개방되는데, 맑은 날에 고지대에서 보는 일몰과 빙하가 일품이라 인기가 많습니다. 트레일은 '스카이라인 트레일'부터, '원더랜드 트레일', '톨미 피크 트레일' 등 다양하지만 저는 '스카이파인 트레일'과 '톨미 피크'에 대해서 자세히 공유해 드릴 예정입니다. 일단 이 포스팅에서는 톨미 피크 트레일과 그곳에서의 캠핑 후기를 적어보겠습니다.
레이니어 산 톨미피크 (Tolmie peak)
레이니어 산은 4천미터가 넘고 그 크기 또한 엄청납니다. 미국의 국립공원으로 자연보호가 잘 되어 있는 곳이라, 운전하기 쉽지 않은 비포장도로도 꽤 됩니다. 저는 '톨미 피크 트레일'을 걷기 위해 일단 '모위치 호수(Mowich Lake)'가 있는 곳까지 운전해서 갔는데, 자잘 자잘한 돌이 가득한 도로가 30분 이상 이어지는 점이 힘들었습니다. 꼭 트레일을 걷는 게 아니더라도 모위치 호수는 너무나 맑고 아름답기 때문에 그 호수를 보러 가는 것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습니다. 허리 디스크를 유발하는 도로만 뺴면요. 모위치 호수 근처에는 공중 화장실과 텐트를 칠 수 있는 장소가 있습니다.
저렇게 네모나게 만들어진 틀 안은 탄탄하게 다져져 있기 때문에 저기에 텐트를 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공원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의자 달린 긴 테이블이 있어서 저기에 물건 올려놓고 간단히 캠핑 음식 먹을 수도 있습니다. 사진 속, 사이트 마다 하나씩 있는 빨간 캐비닛이 보이실 겁니다. 이게 재미있는 물건인데, 바로 음식을 보관하는 캐비닛입니다. 철제로 만들어져 있고, 손을 손잡이 아래 구멍으로 쑥 넣어서 손가락 끝으로 버튼을 밀어 열어야 되는 아주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는 캐비닛입니다. 이렇게 열기 힘든 캐비닛이 캠핑장에 있는 이유는 바로 야생곰 때문입니다. 레이니어 산에는 곰 외에도 산양, 사슴, 여우 등 다양한 산짐승이 삽니다. 야생 동물은 마주치면 늘 위험도가 따르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야생곰은 말이 필요 없는 상위 포식자임을 아실 겁니다. 간혹 사람들이 캠핑장으로 가져온 음식 냄새를 맡고 내려와 분란을 일으키는 일이 있기 때문에 그걸 막기 위해 일부러 열기 힘든 캐비닛들이 음식 보관용으로 사이트마다 하나씩 놓여 있습니다.
캠핑장 바로 옆에는 이렇게 공중 화장실이 하나 있습니다. 야생 캠핑을 할 때는 삽 하나 들고 화장실을 만들어야 할 때도 많은데, 이렇게 실내 화장실이 있는 것만으로도 캠핑의 난이도가 편해집니다. 그렇지만 이곳은 전기도 수도도 들어와 있지 않은 산입니다. 화장실에 불도 없고 싱크대도 없고, 화장실도 밑이 뻥 뚫려 있는 수세식 화장실입니다. 물론 오물을 처리하는 화학 약품때문에 겨울철에는 냄새 걱정 없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기는 하지만, 정말 볼 일만 처리하는 곳일 뿐 그 외에 다른 걸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캠핑 가는 날 비가 온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항공편과 호텔, 다른 일정 등이 이미 다 예정되어 있어서 캠핑 날짜를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다행히 텐트를 칠 때까지는 비가 오지 않았고, 트레일에 진입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와도 산행을 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예정대로 올라갔고, 트에리 입구에서 비 때문에 안개가 뿌옇게 낀 호수를 촬영했습니다. 비록 흐린 날씨로 기대했던 호수와는 다른 풍경이었지만, 왠지 으스스한 분위기가 감도는 이런 분위기도 좋아해서 의외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던 것도 행복했습니다.
톨미 피크 트레일은 날씨가 괜찮은 날이라면, 보통 세 시간에서 세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길이입니다. 난이도는 제 생각으로 초급에서 중급 사이 정도 같습니다. 곳곳에 넘어야 하는 쓰러진 나무들이 조금 있고, 높이가 높은 돌계단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비맞으면서 미끄러워진 길을 산행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난이도가 높은 트레일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트레일 자체가 아주 아름다운 건 아닙니다. 일반 숲이나 산을 걸어가는 풍경과 같고, 비탈길이 꽤 있기 때문에 미끄러지지 않게 신경써서 걸어야 합니다. 제가 간 날은 비가 와서 그런 것도 있지만 본래 워싱턴 주는 비가 많이 오는 곳이어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길이 젖어 있는 느낌입니다. 산행을 하는 사람들한테는 불편할 수 있지만 그 때문에 이쪽은 질 좋은 버섯들이 잘 자라고 산불이 잘 나지 않습니다. 저는 트레일을 우습게 보고 일반 레깅스에 러닝화 신고 갔는데, 꼭 등산 바지 정도는 갖춰 입고 가는 걸 추천드립니다. 재킷도 언제든 갑자기 내리는 비에 대비할 수 있도록 방수가 되는 걸 입고 가야 합니다. 저는 그 어떤 장비도 없이 갔는데 내리는 비를 다 맞아가며 산행을 해서 몸이 좀 고생했습니다.
톨미 피크 트레일을 열심히 오르다 보면 급 넓은 산이 병풍처럼 펼쳐집니다. 그러면 '유니스 호수(Eunice Lake)'에 다 왔다는 뜻입니다. 산 곳곳에 숨겨진 호수들이 정말 많습니다. 트레일 올라오기 전 본 모위치 호수도 멋있었는데 유니스 호수 또한 그 깊이와 넓이가 꽤 크고 산들에 둘러쌓여 있어서 그런지 분위기가 또 다릅니다.
유니스는 1809미터 정도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 누구도 손 댄적 없는 것처럼 물이 아주 깨끗하고 투명합니다. 산속에 이런 호수들이 많으니 야생 동물들이 살기에 참 좋은 환경인 것 같습니다. '유니스 호수'에서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전망대가 있고, 하룻밤 묵을 수 있는 무료 산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료 산장이라 예약은 안 되고 그저 선착순입니다.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게 본래 목표였지만 비가 너무 거세게 왔고, 전망대까지는 가파름의 각도가 더 심해서 유니스 호수까지 구경하고 다시 내려왔습니다. 두피부터 속옷까지 정말 온몸이 비에 쫄딱 젖어서, 내려와서는 일단 차에서 옷 갈아입고 컵라면 먹으면서 쉬다가 텐트로 돌아가 잠들었는데, 산 속이라 온도가 낮아서 그런지 다음 날 보니 텐트가 얼어 지퍼가 잘 안 열릴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밤에 산에서 본 하늘은 별들이 너무 가깝게 보여서 비현실적인 풍경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환상적이었습니다. 새벽에 다시 본 모위치 호수는 더없이 신비로웠습니다. 아래에서 동영상 공유합니다.
새벽 물안개 낀 모위치 호수
처음에는 비가 와서 운이 안 좋구나 생각했는데, 비가 와도 안 다치고 무사히 트레일을 따라 산행을 즐길 수 있던 것과, 쏟아지는 별을 보며 텐트에서 문제 없이 잘 수 있던 걸 보면 운이 좋아도 억세게 좋은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날이 좋으면 더 편했겠지만. 그래서 다음에 다시 날 좋을 때까지 전망대까지 다시 도전해보고 싶은 트레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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