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세 시대 축제(앨라배마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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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지역마다 참 다양한 축제가 있는 만큼, 미국도 한국과는 다른 색다른 축제가 많습니다. 최근 알게 된 축제 중에 하나가, 옛 중세 시대 스타일의 옷을 입고 즐기는 축제인데, 기간은 달라도 각 지역마다 있을 만큼 미국인들에게 인기 많은 축제 중 하나입니다. 저는 제가 살고 있는 앨라배마 지역 중세 시대 축제를 먼저 가봤는데, 그 후기를 적어보려 합니다. 

 

중세 시대 축제장 입구
중세 시대 축제장 입구

앨라배마 중세 시대 축제는 타 지역에 비해서 작은 편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지역 내에서 엄청 화제가 되는 것 같지도 않았고, 한 달을 넘게 이 축제만 하는 지역도 있는 반면에, 앨라배마 중세 시대 축제는 딱 주말에만 이틀 동안 열립니다. 그래서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고, 미국 중세 시대 축제를 가까운 곳에서 경험한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방문했습니다. 티켓은 미리 온라인으로 예매했고, 1인당 15달러 정도였습니다. 티켓 금액도 지역에 따라 전부 다릅니다. 

중세 시대풍 옷, 장신구 가게
중세 시대풍 옷, 장신구 가게

중세 시대 축제에 무조건 코스튬을 하고 가야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만큼은 옛날로 시간 여행을 한 듯한 기분을 느껴보자는 게 축제 콘셉트이기 때문에, 이 축제에 참여하는 주최자들과 상점들은 전부 코스튬을 하고 있습니다. 손님들은 뭘 입고 가든 자유인데, 저는 약간이라고 중세 느낌을 주는 옷을 입으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일상복 중에서 그 당시 여성들이 입었던 코르셋 디자인의 원피스를 입고 갔습니다. 가서 보니, 코스튬을 하고 온 것과 그렇지 않은 것과 느끼는 재미가 다릅니다. 내가 코스튬을 한 게 훨씬 재미있습니다. 사진 찍는 것도 그렇고, 내가 입고 있는 코스튬에 따라 축제 내 상점들이 콘셉트를 잡아 말을 걸어주기도 하기 때문에 훨씬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가서 알았지만, 코스튬을 하지 않고 가도, 이곳에서 중세 시대풍 옷과 액세서리를 많이 팔고 있기 때문에, 원하면 이곳에서 구매해 옷차림을 바꿔 볼 수 있습니다. 이 축제는 단순히 중세 시대풍 옷만 입는 게 아니라 '판타지 중세 시대'기 때문에,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로 코스튬을 한 사람도 엄청 많았습니다. 저는 우연히 제가 입고 간 옷이 판타지 영화의 요정 콘셉트로 나오는 사람들이 입은 옷과 약간 비슷해서, 이곳에서 액세서리를 부착했더니 코스튬한 느낌이 더 나서 좋았습니다. 

 

일반 가게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가발과 모자, 융드레스 같은 원피스부터, 수도승 옷, 해적 옷, 대장장이, 마법사 등 정말 다양한 컨셉의 코스튬들이 존재합니다. 거기에 어울리는 목걸이, 귀걸이, 머리 장식도 너무 많아서 사고 싶은 욕구가 엄청 올라왔습니다. 옷이 이미 입고 갔기에 구매한 건 없지만, 제가 한 건 요정용 뾰족 귀와 페이스 페인팅을 해주는 가게에 가서, 귀를 부착한 겁니다. 이런 축제가 처음이니 요정용 가짜 귀라는 걸 판매하는 지도 처음 알았습니다. 반지의 제왕 같은 영화에 보면 엘프족들 귀가 전부 뾰족한데, 그런 가짜 귀들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도 구매 가능하지만 여기서 사면, 직원이 직접 귀에 부착도 시켜줍니다. 

중세풍 건물들
중세풍 건물들

엘프귀도 달고, 머리에 쓰는 화관도 구매해서 쓰고 다니니 괜히 기분이 진짜 다른 세상으로 넘어온 것만 같습니다. 달라진 본인의 모습을 보는 게 재미있기도 해서 한창 신나는 기분으로 돌아다녔습니다. 열심히 다닌 축제장은 생각보다 훨씬 넓었고, 사람도 많았습니다. 너무할 정도로 사람이 없는 거 아닌가 걱정한 게 정말 기우일 정도로, 꽤 많은 사람들이 축제장을 찾고 있었고, 장소도 넓어 공연 보느라 여기저기 바쁘게 뛰어다녀야 했습니다. 단순히 중세풍 옷을 입고 모여보자가 아니라, 실제로 중세 시대 때 많이 했던 활동도 합니다. 셰익스피어 연극 같은 것도 작은 무대를 만들어서 라이브로 하고, 대장간도 있어서 무기를 만드는 걸 보여주는 곳도 있고, 마녀의 약을 만드는 콘셉트의 장소도 있어서, 이상한 약을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왕과 왕비 같은 왕가 사람들을 연기하는 분들을 보는 것도 재미입니다. 또, 해적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가짜 칼을 맞대며 싸우는 장면도 봤습니다. 물론 진짜 싸움이 아니라 연기기 때문에 마음 편히 볼 수 있습니다. 축제장에 들어가면,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어디에서 무슨 연극 공연이 있다, 전통 악기 공연이 있다, 이렇게 적혀 있기 때문에 지도를 참고해 원하는 공연들을 열심히 보고 다녔습니다. 아쉬웠던 건, 식당이 적었다는 건데요. 제 경험상 미국은 식품법이나 위생법이 까다로워 그런 건지, 아니면 애초에 한국인들에 비해 음식에 대한 중요도가 적은 건지, 축제에 가도 음식을 파는 곳이 많이 없고, 있어도 그 수가 굉장히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점심시간이 되자 푸드 트럭에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설 수밖에 없었는데, 메뉴가 다 튀김 메뉴가 마음에 들지도 않았고, 그거 먹자고 긴 줄을 서기도 싫어서 좀 더 축제장을 걸으니, 옛날 스타일로 만든 버터와 빵, 닭고기를 조금 파는 곳이 있어서 거기서 요기를 했습니다. 전통 스타일로 직접 손으로 만든 음식들이라 그런가 소박한데도 꽤 맛이 있었습니다. 

마상 시합
마상 시합

중세 시대 하면 역시 마상 시합이 빠질 수 없겠죠. 동양에서도 있었지만 서양에서도 이렇게 갑옷으로 무장한 채 말을 타고 창으로 찌르는 마상 시합 같은 걸 많이 했다고 하죠. 중세 시대 축제에 가면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스포츠가 마상 시합 재현입니다. 축제장에서 하는 것이니 스포츠와 연극을 섞어 놓은 듯한 모양입니다. 그래도 철갑옷에 플라스틱 창이 맞부딪혀 내는 소리가 여간 큰게 아니라 보면서 놀라기도 하고 흥분되기도 했습니다. 아마 이런 마상 시합 전문 배우들이 아닐까 싶은데, 다들 진짜처럼 해야 하니 말도 잘 타야 되고 운동 신경도 있어야 하고 여러모로 대단해 보였습니다. 

 

중세 시대풍 옷과 악세사리 뿐만 아니라, 수정 구슬이나 타로를 통해 미래를 봐주겠다는 판타지풍 점집도 있고, 알록달록한 꽃잎을 넣어 만든 수제 비누나 향 같은 일상생활에서 쓸 수 있는 소품도 많이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또, 해리포터에 나올 법한 마법 지팡이를 파는 수레도 있었는데, 수레 자체도 너무 귀엽고, 가게들이 전부 숲에 있어서 그런지 현실과 동 떨어져 있는 느낌이 들어 더 집중하기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번 앨라배마 중세 시대 축제에서 제가 제일 좋았던 건, 찻집이었습니다. 엘프, 요정들이 운영한다는 콘셉트의 이름도 요정스러운 이상한 차들을 판매하는 부스가 있었는데, 다들 요정풍으로 입고 있는 코스튬도 너무 예뻤고, 또 그 자리에서 우려내 얼음에 담가 주는 차가, 정말 시원하고 달지도 않고 맛있어서 순간 진짜 요정차인 줄 알았습니다. 날이 더운데 코스튬도 하고 곳곳을 걸어 다니니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흔히 먹는 소다가 아니라 판타지 게임에 나올법한 이름의 차들을 판매하고 있으니 인기가 정말 좋고, 기대한 만큼 맛도 있습니다. 축제에서 준비한 공연들을 보고 부스를 다 돌아다닌 후, 마지막에 요정 부스에서 차를 마시니 더위가 피곤이 잠시나마 사라지며, 이 축제를 더 즐기게 된 것 같습니다. 

워낙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넓어 어딜 가봐라, 뭐가 좋다라고 추천을 쉽게 할 수는 없지만, 중세 시대 축제가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가는 지역의 축제 기간을 확인하고, 참여해 보는 것도 정말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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