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 같은 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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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거너씨의 가까운 분들이 갑작스레 하늘로 가 버리셔서 마음이 안 좋습니다. 좋은 사람들이 먼저 하늘로 간다는 말이 있던데 그 말이 진짜인건지,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많이 뿌리고 간 분들이라서 더 안타깝네요. 어제는 거너씨의 삼촌 장례식에 다녀왔는데, 그 분이 플로리다에 터를 잡고 계셨기에 장례식도 그곳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장례식이 아닌, 그의 찬란했던 삶을 축하하고 그와의 기억을 추억하는 파티 같은 장례식으로 치뤄진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게다가 참전용사셨기에 그에 대한 미국인들의 추모 의식도 살짝 엿볼수 있었습니다. 파티 같은 장례식이었기에 좋은 마음으로 고인을 기리며 포스팅합니다. 

목차

    화장 후에 이루어진 장례식 

    사실 거너씨의 삼촌의 부고를 들은 건 지난 달 중순이었습니다. 패러글라이딩, 스쿠버다이빙, 경비행기 조종 등 50대의 나이에 많은 도전을 하며 즐겁게 사시던 분이었고, 드디어 그만의 경비행기를 마련해 기뻐하며 청소하던 중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가셨습니다. 미국에서도 보통 사망일로부터 가까운 시일에 장례식을 치룬다고 하는데, 삼촌의 아내인 숙모는 다른 결정을 하셨습니다. 일반 가까운 가족, 삼촌의 딸과 그의 전처를 불러 소박하게 추모 후 화장을 먼저 했고, 추수감사절이 끝난 12월 초 정식 장례식을 하기로 결정한거죠. 

    거너씨의 삼촌과는 5년 전에 플로리다에서 만나서 재혼하신 분으로, 두 분이 정말 즐겁게 사셨던 것 같은데 이리 짧게 끝나버린 결혼 생활 또한 안타깝습니다. 어쨋든 현재는 그가 그의 반려자이기에 그 분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생전 고인의 성격과 즐거웠던 그의 삶을 고려해 슬픈 장례식이 아닌 편안하게 와서 즐기고 그를 추모하는 파티 형식의 장례식을 치르기로 했다고 전달받았습니다. 파티 같은 장례식을 한국에서는 본 적이 없기에 어떤 건지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만, 장례식에 모두 고인이 즐겨 신었던 슬리퍼를 신고 캐츄얼한 옷을 입고 오라고 해서 확실히 보통의 장례식과는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렇게 실제 돌아가신 날로부터 보름 정도가 지난 후 그의 장례식이 진행됐습니다. 

     

    참전 용사에 대한 장례 예우 

     

    멀리서 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주말로 장례식이 잡혔고, 제일 먼저 보통 장례식을 치루는 공간인 Funeral home에 가족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장례 절차에 대해 자세하게 들은 적이 없기 때문에, Funeral home에서 간단히라도 장례식을 하고 다른 장소로 옮기는 줄 알았는데, 그곳은 정말 가족들이 모이는 장소에 불과했습니다. 삼삼오오 고인의 형제들, 친척들의 차가 도착해 주차장에서 인사를 나누었고, 그리고 대규모의 오토바이족이 등장했습니다;; 

    참전용사, 재향군인 라이더들
    참전용사, 재향군인 라이더들

    도로에서 운전을 하다보면 차 크기에 맞먹는 오토바이를 타고 검은 자켓과 가죽 바지를 입은 채 흰 머리를 휘날리며 달리시는 분들을 꽤 많이 보는데, 이 분들도 때에 따라 다같이 모여 도로를 달릴 때가 있습니다. 그 대규모 라이더들이 와서 유족들과 이것저것 상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알고보니 그들은 모두 참전용사 혹은 재향 군인인 분들이었고, 고인과의 실제 관계를 떠나, 같은 재향 군인으로서 진짜 장례 장소까지 유족들 안내 봉사를 하기 위해 모인 것이었습니다. 고인이 되신 거너씨의 삼촌분은 젊은 시절 미 군대에서 복무했으며 이라크전에도 참전했고, 심지어 한국에서도 복무하신 적이 있습니다. 때문에 거너씨가 처음 한국에 와서 집에 침대가 없다고 했을 때, 그럼 '요'를 깔고 자라고 조언을 해 준 분이기도 합니다. 한국 미군 부대에서 있으면서 한국 문화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고 계셨던 분인데, 살아 생전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눠보지 못 한게 다시 한 번 아쉽습니다. 

    아무튼 재향 군인들이 앞에서, 뒤에서 해 주는 에스코트로 유족들은 무사히 장례 파티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끝난 게 아니라 처음 장례 절차도 군인에 예우를 갖춰 치뤄졌습니다. 처음 장례 장소에 도착했을 때, 고인의 많은 친구분들이 이미 밖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파티 형식으로 진행된 장례였기에, 고인의 절친한 친구 분의 집에서 장례 파티가 이루어졌는데, 먼저 집 앞에서 장례식, 그리고 집 안에서 파티 및 화장한 고인을 보내기 등의 절차가 있었습니다. 

    장례 의식을 위해 온 군인들
    장례 의식을 위해 온 군인들

    에스코트를 해 준 왕년의 미군 라이더분들은 에스코트 후에도 남아, 장례 장소 앞에서 이뤄진 식에도 참여를 해 주셨습니다. 오른쪽에는 고인을 추모하기 위한 그의 친구들이 모두 더운 플로리다 날씨에 맞춰 편안한 옷을 입고 있었고, 왼쪽에는 복장을 갖춘 군인들이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국 국기를 든 라이더 분들을 따라 유족들이 들어섰고, 앞에는 유족들을 위한 간이 의자 몇 개를 깔아둔 상태였습니다.  

    미국 국기를 이용한 장례 의식
    미국 국기를 이용한 장례 의식

    이 의미는 제가 잘 모르겠지만, 참전용사였던 고인을 위한 세레모니 중 하나입니다. 큰 미국 국기를 펼쳤다가 다시 접는 의식을 했습니다. 그리고 장총을 들고 대기하고 있던 군인들이 여러 번의 총을 쏘고, 화장된 고인이 들어있는 상자를 조심스레 유족에게 주고 그의 업적을 기리는 감사패 같은 것들도 전달했습니다. 

    인상 깊었던 건 지역 재향 군인 모임에 속해 봉사하는 분들 중에는 여자분들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위 사진에서도 예복을 입고 접힌 미국 국기를 들고 있는 분은 꽤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할머니 분입니다. 그리고 에스코트 해주신 라이더 재향 군인 중에서도 여자 분들이 있었습니다. 왕년에 군대에서 복무한 여군이셨는지 잘 모르겠지만, 군대와 아무 연관이 없으면 이런 의식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없으니 재향 여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군인이었던 자부심을 갖고 나이 들어서도 지역 사회에 봉사, 헌신하고 싶은 마음은 성별이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이 의식은 모두 엄숙하게 진행되었으며, 이 때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유머와 함께 하는 추모 

    군인들이 함께 한 의식이 끝난 후에는 고인의 절친이 마이크를 잡고 사회를 봤습니다. 그는 고인의 평소 성품대로, 또 그의 아름다웠던 삶을 축하하는 파티의 의미로 분위기를 바꿨습니다. 주로 고인과 있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풀어냈고, 그의 아내에게서 들었던 에피소드, 그의 형제에게서 들었던 고인의 어린시절 추억들을 대신해 재미있게 전달했습니다. 그가 아내의 55번째 생일에 가짜로 실버 타운 우편물을 만들었다던가, 어린 시절에 동네에서 유명한 말썽꾼이었다던가, 이라크 군복무 시절 봤던 이상한 이라크 인 등 다양하고 웃긴 얘기들이 나왔습니다. 

    그 덕분에 모두 울다가 웃을 수 있었고, 고인이 살아있는 동안 얼마나 주변사람들을 즐겁게 했는 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 얘기들을 들으면서 왜 그의 아내가 슬퍼하는 장례식이 아니라 파티 형식으로 그의 삶을 축복하자고 했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분명 거너씨 삼촌이라면 그의 장례를 이런 형식으로 해주는 걸 선호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인의 형제인 거너씨 부모님과 다른 삼촌은 고인을 추억하는 예쁜 티셔츠를 만들어 청바지에 함께 맞춰입었습니다. 형제의 장례식에 티셔츠를 만들어 옷을 맞춰입는 것도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파티 형식의 장례라 가능한 것 같습니다. 

    물론 모든 죽음은 슬프고 안타깝고, 특히 남은 사람들은 심적으로 신체적으로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인이 얼마나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았고, 얼마나 그의 삶이 가치 있었는지 주변인들과 함께 나누며 이제는 하늘로 간 그를 축복하는 방법도 꽤나 좋은 추모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고인의 상황에 따라 모두 이런 방식의 추모 방법이 가능하지는 않겠지만, 나쁘지 않은 장례 문화인 것 같습니다. 

    아름다웠던 장례 파티 장소  

    그렇게 약 20여분간 사회자의 에피소드 얘기가 끝나고, 장례 파티가 치뤄지는 집 안으로 들어가게 됐는데, 가족들이 먼저 들어가고 후에 친지들이 들어왔습니다. 집 안 거실 TV와 안쪽 방 TV에는 고인의 어린 시절 사진부터 군복무 사진, 결혼식 사진,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한 사진 등 도전적이고 따뜻했던 그의 삶을 볼 수 있는 영상들이 나오고 있었고, 진짜 파티처럼 각종 음료와 술, 간단한 음식도 차려져 있었습니다. 

    거실과 부엌에서 고인의 영상을 보는 사람들
    거실과 부엌에서 고인의 영상을 보는 사람들

    사람들은 고인의 사진 영상을 보며 다시 한 번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사회자가 얘기했던 에피소드와 관련 있는 사진이 나오면 다시 웃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장례 파티를 통해 반가웠던 사람들을 만나면 같이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눴고, 정말 그 모습이 일반 파티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장례 파티에 차려진 간단한 음식들
    장례 파티에 차려진 간단한 음식들

    보통 미국 장례식장에서는 손님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일이 많지 않다고 들었는데, 여기는 파티 형식이다보니 간단한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콩요리와 맥앤 치즈 (치즈 마카로니), 그리고 돼지고기 바베큐가 차려져 있었습니다. 돼지고기 바베큐나 너무 맛있어서 두 그릇이나 집어 먹었을 정도였는데, 먹고 나니 한국의 육개장도 생각이 났습니다. 이리보면 동.서양은 음식 문화가 참 다른 것 같습니다. 음료는 세 개나 되는 아이스박스에 맥주, 5%알콜, 물 등이 다 따로 있었고, 와인도 백포도주와 적포도주 나뉘어서 테이블에 놓여있었습니다. 술과 음식이 있으니 더욱이 파티 분위기가 나서, 장례때문에 사람들이 모인 걸 살짝 잊을 정도였습니다. 

     

    제가 놀랐던 건, 이 장례 파티를 하는 장소가 고인의 집이 아니라 고인의 친구의 집이었다는 겁니다. 자신의 집을 친구의 장례를 위해 파티 장소로 내놓은 게 놀라웠으며, 이를 통해 얼마나 고인이 주변인들에게 좋은 사람이었는지 느끼기도 했습니다. 또, 파티 장소로 쓰인 이 집은 눈이 돌아가게 아름다웠는데, 특히나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한 눈에 펼쳐지는 호수뷰가 기가막혔습니다. 

    호수가 한 눈에 보이는 집
    호수가 한 눈에 보이는 집

    플로리다 주에 유스티스라는 큰 호수가 있습니다. 그 호숫가에 지어진 집으로 집에서 이런 멋진 풍경이 보입니다. 역사적 장소가 아닌 사람이 실제로 살고 있는 집 중에서 제가 가본 곳 중 가장 아름다운 집이었습니다. 

    파티 장소에서 찍은 호숫가
    파티 장소에서 찍은 호숫가

    호숫가에는 보트 정박하는 곳과 정자 비슷한 게 있어서, 바로 집 앞에서 보트 타고 호수로 나가 낚시를 즐길 수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플로리다스럽고 예쁜 곳이던지, 가족들과 이 집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얘기했는데, 다들 하는 말이 이런 집에 살면 집 밖으로 절대 안 나갈거라는 말. 저 같아도 집에서 일어나면 이런 풍경이 보이는데 카페는 뭐하러 가며, 휴가는 뭐하러 가나 싶었습니다. 

    작은 수영장이 있는집
    작은 수영장이 있는집

    집주인도 많은 사람들을 대접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런 집을 지은 것 같습니다. 집에 바베큐 설비에 완벽한 야외 주방을 차려놓고, 심지어 고기 훈제 기계까지 들여다 놨습니다. 이런 집에서 사는 것도 좋지만, 이런 집에서 함께 할 사람들이 없다면 슬플 것 같은데, 주변인과 함께 나누는 집주인의 성품이 이 집을 더 풍요롭고 따뜻하게 보이게 합니다. 

    장례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
    장례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

    이곳에 온 사람들 중 단 한 명도 양복이나 검은 옷을 입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사진만 보면 정말 평범한 파티같아 보입니다. 저도 복장에 대한 얘기는 들었지만, 그래도 장례식인데 너무 화려한 옷을 입고 가는 건 아닌 것 같아 남색 세미 정장 원피스를 입고 갔는데, 제가 가장 얌전하게 옷을 입고 간 사람이었습니다. 

    12월이라 집 안은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꾸며져 있어서 모르는 사람들이 봤을 때는 이른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는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성탄 장식으로 꾸며진 장례 파티 장소
    성탄 장식으로 꾸며진 장례 파티 장소

    호수에 뿌려진 고인 

     

    살아생전 물을 굉장히 좋아했다던 거너씨의 삼촌. 낚시도 좋아하고, 수영하는 것도 좋아해서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도 땄습니다. 때문에 호수가 많고 바다가 가까운 플로리다로 이사가신 것 같습니다. 물론 따뜻한 기후 때문에 은퇴 후 노년을 보내러 많은 미국인들이 이사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물 엑티비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플로리다는 최고의 지역처럼 보입니다. 화장한 고인을 물가에 뿌리는 건 이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장례 파티를 연 지인의 집은 호숫가였고, 일정 시간 파티를 보낸 후 가족들만 따로 호수로 가서 고인을 물에 흘려보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다시 가족들은 눈물을 흘렸고,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 그를 추모를 기념하며 가족들끼리 다 같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눈은 울고있으면서 입은 애써 미소를 짓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 그 안에 인간의 희노애락이 다 담겨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이 날 찍은 가족 사진 중 하나에는 이상한 빛이 찍혔는데, 햇빛도 아니고 손가락도 아니고 왜 찍혔는 지 알 수 없는 빛이어서 가족들은 고인의 영혼이 그 날 함께했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대부분의 가족들은 고인을 떠내려보내고 호텔로 돌아갔고, 친구 지인들은 파티 장소에 좀 더 남아 있었습니다. 파티 같은 장례식은 처음 가봤는데, 아무리 파티 형식이라고 해도 나름의 장례 절차가 있고 예의가 있었던 게 좋았고, 사람들이 울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분위기도 유족들의 서글픈 마음을 달랠 수 있었수 있었다 생각합니다. 저도 만일 나중에 내가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살아있을 때 미리 장례식을 열어 좋아하는 사람들과 얘기 나누고 웃고 떠들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실제 사후 처리는 가족들에게 조용히 맡기고 싶습니다. 물론 죽음을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것도 쉽게 얻을 수 있는 행운은 아니겠지만요. 

    나라마다 장례 문화는 다 다르고, 시간이 변하면서 장례 형식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지만,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고 슬퍼하는 마음은 똑같은 것 같습니다. 단지 방법에만 차이가 있는 것이겠죠. 부디 거너씨의 삼촌이 좋은 곳에서 영면하시길 바라며, 그 분의 좋은 지인들 덕분에 저도 새로운 추모 방법을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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