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집을 짓고 10년 이상 되면 수도관 파이프가 많이 녹이 슨다고 합니다.
그럼 눈에 잘 안보이더라도 조금씩 녹물이나 이물질이 계속해서 섞여 나올 수가 있죠.
요즘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되면 파이프 녹 공사도 하고, 녹이 잘 안 스는 걸로 교체하기도 하는데, 제가 사는 집도 20년이 넘은 아파트 단지라서 파이프 녹이 좀 걱정스럽기는 했어요.
그래도 육안으로는 별 문제 없이 맑은 물이 나오는 것 같아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쓰다가 어젯 밤에 갑자기 갈색 물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변기물을 내려도 맑은 물이 채워지는 게 아니라 갈색을 띄는 물로 채워지고, 화장실 세면대 물도 그렇구요.
변기물이야 물이 모여져 있으니까 육안으로도 확 확인이 가능한 정도인데, 세면대 물은 희미해서 물을 따로 떠다놓아 보면 물 색이 다르다는 게 느껴졌어요.
당황해서 변기물까지는 찍어두지 않았지만, 세면대 물을 흰 컵에 받아둔 건 찍어놨어요.
색이 어두운 것뿐만 아니라 검은색 먼지 같은 자잘한 것들도 눈에 보이죠?
뭔지도 모를 이런 이물질이 섞여 나오니 아주 짜증이 확 나더라고요.
관리사무소에서 알아서 잘 관리하는 줄 알았더니 전혀 아니었구나 하면서.
이미 밤 늦은 시간이라 사무소에 전화하기는 늦었고, 모르면 몰랐지 이런 물이 나오는 걸 알면서 찜찜하게 씻을 수가 없어, 정수기 물로 양치만 한 후에 잤습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 아침에 샤워기 필터기를 사러 돌아다녔어요.
온라인으로 주문해도 되지만, 그러면 배송에 시간이 걸리고, 물을 쓰는 건 당장 급한 일이었으니까요.
한국에서도 샤워기 필터기를 주문해서 쓰기도 했고, 또 베트남에 살 때도 주문해서 한 가득 가져간 적이 있는데, 정말 말도 못하게 필터가 더러워져서 일주일에 하나씩 갈아야 했었어요.
미국에서도 같은 일 반복 하게 생겼네요.
안 그래도 미국 물은 석회질이 심해서 그 때문에 머리 감으면 머리가 퍽퍽해진다거나, 피부에 문제가 생긴다거나 하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제가 무뎌서 그런지 저는 머리카락의 변화는 잘 못 느꼈어요.
피부도 더 안 좋아질 때가 있긴 했지만, 그 전에도 그닥 좋은 피부는 아니었기에 큰 차이를 몰랐나봐요.
저에게는 석회질이 문제가 아니라 이물질 섞인 녹물 같은 게 나오니까, 근본적으로 물의 위생 상태가 문제였어요.
미국에서 집 관련 상품들을 파는 전문 가게는 Home depot 이라는 곳과 Lowe's라는 곳이 있어요.
둘 다 집 근처에 있어서 Home depot부터 갔습니다.
거기서는 주방용 수도꼭지 필터는 있지만, 샤워용 필터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직원들이 그다지 친절하지 않더군요.
그냥 그만 보고 온라인으로 주문할까 하다가 6분거리에 Lowe's라는 같은 용품들을 파는 곳이 있어 혹시 몰라 갔어요.
Lowe's에 샤워 필터가 많은 건 아니었지만, 아예 하나도 못 봤던 home depot 보다는 나은 상황이어서 거기 있는 브랜드를 인터넷으로 찾아보다가 지나가던 직원이 저를 발견했어요.
Tom이라는 이름표를 가진 직원이 어찌나 친절한 지, 매장 내에 있는 모든 필터들을 다 보여주며 돌아다녔습니다.
그렇게 친절하고 저를 데리고 다니며 애를 써줬는데 살 마음이 없더라도 사고 싶더라고요.
가격은 좀 나갔지만, 당장 필요한 샤워필터였고, 교체하는 것도 너무 쉬워보여서 구매해 집에다 설치했습니다.
Sprite showers라는 브랜드의 필터 샤워기예요.
샤워기 안에 이미 필터가 들어 있어서, 물이 여길 통과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수된 물이 나오는 샤워기입니다.
필터는 약 6개월 주기로 갈아주면 된다고 하고, 필터만도 팔고 있더라고요.
다른 곳보다 Lowe's에서 주로 파는 제품 같은데, 이 외에 다른 선택지가 적기도 했고, 이만하면 괜찮아보였어요.
이렇게 생긴 필터도 있지만, 저는 샤워기 줄이 있어서 자유롭게 쓰는 게 좋지, 위에서만 물이 나오는 형태는 씻기 엄청 불편해서 좋아하지 않아요.
세금까지하니 50달러가 좀 넘는 금액이 나왔어요.
오프라인 매장에서 사기도 했고, 이미 안에 필터가 들어있어 그런지 가격대가 좀 나가더군요 ㅠ
안에는 샤워기 줄도 같이 들어있었는데, 이미 저희 집에 샤워기 줄은 있어서 쓰던거에 그대로 쓰기로 했어요.
이 샤워기 줄은 기존에 쓰던 게 오래되면 그 때 교체해도 되겠죠.
이렇게 머리 부분만 바꿔줬습니다.
샤워기 끝 부분을 돌리면 머리가 떨어져나가고, 다시 새 샤워기 머리를 끼워 돌려주면 끝이에요.
표준형으로 샀으니, 굳이 뭘 쟤보지 않아도 사이즈가 맞아요.
샤워기 줄까지 새로 연결했으면 조금 더 품이 들었을텐데, 그냥 머리만 바꾸니까 10초 안에 끝났어요.
바로 이 기다란 부분이 필터예요.
흔들어보면 안에 들어있는 활성탄이나 불순물을 제거하는 요소들이 흔들리며 내는 소리가 들려요.
이왕이면 눈으로 얼마나 더러워지는 지 볼 수 있는 필터면 좋은데, 제가 간 마트에서는 찾기 어려웠어요.
온라인으로는 구할 수 있답니다.
그래도 필터 하나로 꽤 오래 쓸 수 있다고 하니 다행이에요.
샤워기를 갈아 낀 후 물을 받아보니, 색도 괜찮고 불순물도 나오지 않았어요.
제일 좋은 건 집에 들어오는 물이 화장실이나 주방으로 흘러가기 전에 정수해주는 걸 달면 좋겠지만, 저희 집이 아니라 함부로 그렇게 해도 되는지 모르겠고, 또 저희집이 아니니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더라고요.
나중에 저희 이름으로 된 집을 마련해서 오래 살게 되면 그 때는 그렇게 할 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지금은 이렇게 필터만으로도 대략 만족스러운 수질을 쓸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네요.
화장실 싱크대와 주방 싱크대에도 필터를 달고 싶은데, 아직 그건 어떤 걸로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주방에서는 설거지 반은 식기세척기랑 나눠서 하고 있는데, 식기 세척기 물은 필터를 달아줄 수도 없고요.
한국에서도 종종 흙탕물이 나온다, 녹물이 나온다는 뉴스가 나오면서 수질 문제가 붉어진 적이 있는데, 발전된 도시라도 수도관리 문제는 끊임없이 해줘야 하는 것 같아요.
당장에 물 안 쓰고 하루 버티기도 힘든데, 깨끗한 물 없으면 할 수 있는게 많이 없어요.
수도관도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아프리카 사람들은 도대체 얼마나 힘들게 사는 건지;;
샤워필터 교체하다가 여기까지 생각이 왔네요.
물은 건강과도 직결되는 거니, 돈이 좀 나가더라도 이런 곳에 아끼지 않는 게 좋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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