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년 같은 2주년 혼인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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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기념일이 있었어요. 

 

한국에서 혼인신고를 한 날인데, 법적으로 부부가 된 날을 기념하며 매년 자그마하게 축하를 하기로 했거든요. 

 

근데 작년에는 제 비자가 너무 오래 걸려서, 법적 기념일, 실제 식을 올린 결혼기념일 전부 다 떨어져서 보냈어요. 

 

뭐 기념일 뿐만 아니라 저희 생일도 그렇고. 

 

그래서 작년엔 결혼 후 처음 맞는 기념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각자 한국과 미국에서 영상통화로 축하 인사나 건넸을 뿐이죠. 

 

올 해 벌써 결혼 2주년이 됐는데 함께 보내는 건 처음이라서 간만에 좋은 식당 가서 분위기를 내고 싶었어요. 

 

기념일이라고 해서 뭐 특별한 걸 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맛있는 밥이나 먹는거죠 뭐 ㅋㅋㅋ 

 

다 그런거 아닌가요 ㅋㅋ 

 

그래도 평소에 잘 가지 않던 레스토랑으로 가고 싶어서 구글로 열심히 식당을 찾아보고, 미리 예약을 해뒀어요. 

 

고층 건물이고 통유리 식당이라 뷰가 예뻐서 가기 좋을 것 같았어요. 

 

식당이 있는 거리 이름을 따서 돌핀이라고 부르는 식당이고, 건물 34층에 있었어요. 

 

거너씨에게는 어디 갈건지 비밀로 했고, 식당이 드레스코드가 있어서, 그것만 하루 전에 알려줬어요. 

 

평소에 늘 티셔츠랑 편한 바지만 입는 사람이고, 재택을 한 지도 꽤 되서 더욱이 셔츠를 입을 일이 없었어요. 

 

이번에 가는 식당에는 셔츠 입고 가야 한다고 하니, 이사올 때 담아둔 상자에서 안 꺼내서 어디 있는지 모른다며 마트에 가서 급하게 셔츠를 사야했을 정도예요. 

 

리뷰가 좋아서 예약하고 갔지만 그래도 사람이 많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바 자리 외에는 점점 꽉 차더라고요. 

 

예약 안 했으면, 간만에 차려입고 가서 낭패봤을 뻔. 

 

저녁 시간에는 직접 피아노치면서 노래 해주는 사람도 있어요. 

 

코로나 이후로 실내에서 라이브 음악을 들어보는 게 얼마만인지. 

 

물론 공연이 아니라 그저 식당 내에서였지만, 그래도 오랜만이라 라이브 노래 자체가 감회가 새롭다고 할까..

 

저 분의 노래 실력을 떠나서 기분이 들떴어요. 

 

보통 예약 없이 온 분들이 자리 나길 기다리거나, 아니면 술 만드는 걸 직접 보면서 특별한 걸 주문해 마시고 싶을 때 여기 앉는데, 이 식당은 뷰를 보러 온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바 자리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뷰가 좋다고 해도 대단한 뷰는 아니고, 그냥 고층뷰예요. 

 

미국은 대도시나 가야 고층 빌딩이 많이 있고, 그게 아니면 땅덩이가 넓어 단층 건물이 훨씬 많은편이라, 이 정도 되는 고층 건물에 올라온 게 실로 오랜만입니다. 

모빌이라는 도시인데, 이 도시에 진입하면 바로 눈에 띄는 이 빌딩도 눈을 맞추면서 볼 수 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까 사방을 다 사진에 담을 순 없었지만, 높은 곳이 아니면 볼 수 없었던 숲이랑 평지, 바다 등 사우스 앨리바마 지역이 한 눈에 보였어요. 

 

직전까지 어떤 레스토랑에 가는지 몰랐던 거너씨도 예상 외에 고층 뷰를 보고 좋아하더라고요. 

 

바닷가 마을이라 바다 뷰 식당은 많이 가봤는데, 여기서 고층뷰는 희귀하니까요. 

 

다행히 창가 바로 옆 자리를 배정 받을 수 있었고, 그 자리에서 다른 각도로 실내를 찍어봤어요. 

 

저 긴 테이블은 '베이비 샤워'파티를 위해 예약된 자리였어요. 

 

베이비 샤워 파티는 보통 집에서들 하는데, 이런 식당을 예약해서 하는 걸 보니 부자인가봐요. 

 

파티 주최자 혼자 다수의 식사까지 다 계산하게 되면 금액이 꽤 나올텐데. 

 

쓸 때 없는 남 걱정을 하며, 식당 내외부를 구경했습니다. 

 

테이블 사이즈는 작은데 준비되어 있는 식기가 영롱한 색을 내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어요. 

 

예쁘기도 했고. 

 

식전빵을 내줬는데, 빵도 부드러운 질감이었지고, 함께 나온 버터도 휘핑크림과 함께 섞은 거라 마찬가지로 부드러웠어요. 

 

일반적인 버터 맛보다 좀 더 가볍기도 하고요. 

분홍색과 흰색으로 만들어서 모양까지 내서 나오니, 아이스크림처럼 예쁘더라고요. 

 

색 생각하면 저도 집에서 버터 이렇게 만들어 먹고 싶은데, 맛은 사실 버터의 본연의 맛을 더 선호하긴 해요. 

레드와인은 잘 안 마시는데, 날도 날인지라 음료는 레드로 한 잔씩 시켜봤어요. 

 

일반 미국 남자답게 거너씨는 라거 맥주를 제일 좋아하고, 저는 와인 마셔도 거의 백포도주 위주로 마셔요. 

 

와인이지만 시원하게 해서 벌컥 벌컥 마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ㅋㅋ 

 

그래서 이리 적포도주 마실 일이 많지 않네요. 

 

와인도 잘 몰라서, 주문하는 음식에 맞게 직원 추천을 받았어요. 

 

맛은 있었지만 굉장히 드라이한 와인이었습니다. 

 

이 날 점심도 든든하게 먹고 가서, 음식이 나올 때 까지만 해도 배가 전혀 고픈 상태가 아니였는데, 빵이 나오니까 군침이 돌아서 식전 빵을 다 먹어버렸어요. 

 

에피타이저도 시켰는데, 빵으로 먼저 배 채운격. 

 

이게 에피타이전데요. 

 

아티초크에 소세지를 넣어 만든거에요. 

 

스프 질감이고 빵 위에 올려서 같이 먹으면 너무 맛있어요. 

 

아티초크 요리 또한 식당마다 맛이 조금씩 달라요. 

 

특히 소세지를 넣느냐, 베이컨을 넣느냐, 치즈는 어떤 것들을 넣느냐에 따라 맛이 많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래도 뭘 넣든 맛있으니까 에피타이저로 먹기에 아주 좋아요. 

 

마음 같아서 숟가락으로 벅벅 퍼 먹고 싶었는데, 미국에선 또 그게 식사 예절이 아니기에 ㅠㅠㅠ 

함께 나온 숟가락은 빵 위에 올리는 용도로만 썼고, 소스만 퍼 먹고 싶을 때는 포크로 먹을 수 밖에 없었어요. 

 

포크로 스프식 음식을 먹는 건 당연한 말이지만 너무 불편 ㅎㅎ 

 

아티초크를 다 먹어갈 때가 되자, 갑자기 무슨 나무 상자를 들고 와서 눈 앞에 펼쳐 보여줬는데, 상자 안에는 나이프가 두 종류 들어 있었어요. 

 

저희 둘다 스테이크를 메인 요리로 주문했는데, 큰 칼을 선호하느냐, 작은 칼을 선호하느냐 그걸 고르게 해주더라고요. 

 

뭘 줘도 상관없긴한데, 이렇게 고기용 나이프를 직접 고르게 해주는 건 처음 봤네요. 

 

나이프는 잘 드냐 안 드냐가 중요하지 크기가 중요하진 않을 것 같아서 작은 걸로 골랐습니다. 

 

고기와 함께 매쉬 포테이토랑 아스파라거스가 나왔어요. 

 

그리고 분홍색을 띄는 크림 뭐시깽이 소스도 같이 나왔는데, 고기에 뿌려 먹으면 맛있다고 했어요. 

 

직원의 강력 추천 소스였는데, 크림 맛이 강했지만 고기에 뿌려 먹으니 실제로 맛이 좋았어요. 

 

거너씨는 퓔레로 주문을 했고, 저는 립아이로 주문했어요. 

립아이는 퓔레보다 좀 더 맛있기는 하지만 크기가 커요. 

 

저는 크기가 이렇게 차이날 정도로 크게 나온다는 걸 모르고 시켰어요 ㅋㅋㅋ 

 

거너씨 고기에 두 배에 가까운 고기가 나올 때 놀랐습니다. 

 

배가 고팠다면 다 해치웠겠지만, 점심도 두둑히 먹고, 식전빵와 에피타이저까지 다 먹은 상태였기에 혼자서는 역부족이었어요 ㅎㅎ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70%는 먹었어요. 

 

고기를 잘라보면 정말 잘 구워서 너무너무 부드럽고 맛있었거든요. 

 

또 가고 싶네요 ㅠㅠㅠ 

 

고기 굽는 스킬은 쉬워보이면서도 참 어려워요. 

 

남은 음식은 알아서 포장을 해줬는데, 그것도 미리 알았다면 힘들게 다 먹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됐을텐데 ㅎㅎ 

 

이 식당이 조금 감동스러웠던 이유는 디저트예요. 

 

저희는 '델리퀸'이라는 가게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을 되게 좋아해서, 고기 먹고 브라우니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 디저트를 일부러 주문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직원이 저희 2주년이라고 서비스로 디저트를 만들어 가져왔더라고요! 

 

이런 감사한 때가.. 

 

테이블에 앉을 때 혹시 오늘 무슨 날이냐고 해서 그냥 대답한 건데, 그걸 기억해뒀다가 'Happy Anniversary'가 쓰여있는 초콜렛과 '초콜렛 봉봉'이라는 디저트를 가져왔어요. 

 

드라이 아이스를 넣어 계속 차가운 상태로 유지시킨 초콜렛이었어요. 

 

주문 안 했는데 뭘 만들어 가져온 줄 알고 화내려다가 마음이 사르르르르 ㅎㅎㅎ 

 

서비스는 언제나 행복입니다. 

 

디저트를 다 먹고 나니 해가 지기 시작했어요. 

 

석양은 저층에서 보나 고층에서 보나 늘 아름답네요. 

 

자주 가기에는 좀 부담스러운 가격대의 식당이라 또 언제 방문할 수 있을진 모르지만, 그냥 식사만으로도 너무 좋은 추억이 됐고, 기념이 됐던 곳이에요. 

 

2주년이지만 1주년같은 기념일에 시간을 보내기에 더없이 충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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